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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이야기

[3.23] 1908 장인환 전명운, 스티븐스 사살의거 1970 한글학자 최현배 사망

by 딧플 2016. 3. 23.


(사진 - 3월 23일 - 위키백과)



(사진 - 3월 23일 - 위키백과)


"대한민국의 왕 김수로?" -_-;; 

-> 금관가야의 왕 김수로 입니다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77&contents_id=1812

















1749 

수학자 피에르시몽 라플라스 출생 - 위키백과


1842

작가 스탕달(본명:마리 앙리 벨(Marie Henri Beyle) 사망 - 두산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17107&cid=40942&categoryId=34426




1882

수학자 에미 뇌터 출생 - 두산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077947&cid=40942&categoryId=34344


에미 뇌터 탄생 133주년 구글로고

https://youtu.be/lk82lf0A5iE




1887 

요세프 차페크(카렐 차페크의 형) - 위키백과




1900 

에리히 프롬 출생 - 다음백과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b24p0338a


고전읽기 1/28 -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 1편

https://youtu.be/ISWlgDmx1bU








1908 

전명운, 장인환 의거(스티븐스 저격) - 위키백과

(사진 - 독립운동가 장인환/전명운 - 네이버캐스트)


<다음백과> 스티븐스 저격의거

1908년 3월 23일 장인환(張仁煥)·전명운(田明雲)이 

일제 침략의 앞잡이로서 대한제국 외교고문이었던 미국인 스티븐스를 사살한 의거.


스티븐스는 워싱턴 주재 일본공사관의 촉탁으로 고용되었던 것을 계기로, 

1904년 12월 27일 대한제국 외부 고문관으로 임용되었다. 

1905년 을사조약 체결 이후 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그를 통해 미국을 비롯한 세계 여론에 

일본의 한국지배를 정당화시키고 국제 여론을 호도(糊塗)하려고 했다. 

막강한 권한을 가진 스티븐스는 막대한 선전비를 뿌려가며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했다.


1908년 3월 이토의 지시를 받고 휴가차 미국으로 향하던 도중 그는 배 위에서 기자들과 회견, 

항구적인 동양의 평화를 위해서는 무능한 한국이 독립을 포기하고 일본의 보호를 받음은 물론 

그 일부로 편입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일본의 한국지배를 선전했다. 

그해 3월 21일 그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여 각 신문에 미리 준비한 성명서를 발표했으며, 

한국인이 일본의 보호국화를 환영한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같은 담화가 22일자 샌프란시스코 각 신문에 보도되자, 그날 밤 샌프란시스코와 그 인근지역에 있는 

한인독립운동 단체인 공립협회 및 대동보국단 회원들은 공립회관에 모여 대책을 의논하고, 

최유섭·정재관·이학현·문양목 등을 대표로 보내어 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취소를 요구하기로 했다. 

그러나 스티븐스가 오히려 대한제국 황제를 비난하고 한국인은 독립능력이 없다고 강변하자, 

정재관이 스티븐스의 턱을 쳐서 때려눕히고, 다른 대표들은 의자로 그를 난타했다. 

대표들이 회관으로 돌아와 그 사실을 보고하자, 

이에 격분한 장인환과 전명운은 스티븐스를 곧 암살하기로 결심했는데, 

상호 연락 없이 따로 진행시켰다. 3월 23일 오전 9시 30분경 스티븐스가 워싱턴으로 가기 위해 

샌프란시스코 주재 일본영사의 안내를 받으며 페리 선창에 도착하자 먼저 도착한 전명운이 권총을 발사했으나 

불발되자, 그에게 달려들어 격투를 벌였다. 이 와중에 도착한 장인환이 총탄 3발을 발사하여 

스티븐스를 사살했으며, 장인환과 전명운은 즉시 미국 경찰에 체포되었다. 

사건 공판은 12월 7일 샌프란시스코 고등법원에서 개정되어 24일까지 계속되었는데, 

장인환은 실형이 선고되어 형기 25년의 금고로 판결되었으며 전명운은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판결이 내려졌다. 

이 저격사건은 종래 분산적으로 전개되었던 아메리카 대륙에서의 독립운동에 전환점이 되었고, 

해외의 항일투쟁을 고무하는 데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b13s1116a


<네이버캐스트>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지를 비롯한 미국의 신문들도 

일제히 ‘스티븐스는 한국의 공적(公敵)이라’는 제목 아래 선생과 

장인환의 친일 미국인의 처단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하여 인류의 양심이 살아있음을 보여 주었다. 

또한 반일 감정이 고조되어 있던 대다수 미국인들도 이 사건에 동정을 표하였으며

미국 본토와 하와이는 물론 멕시코,중국,일본ㆍ노령의 동포들로부터도 많은 성원이 답지할 정도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국내에서도 ‘대한매일신보’가 

1908년 3월 25일부터 4월 17일까지 사건의 전말을 상세히 보도하면서, 두 의사의 옥중 인터뷰까지 게재하여 

국방의 어두운 그림자를 지우기에 노력하였다.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129&contents_id=8060


<위키백과>

1908년 덴버의 감리교회에서 열린 애국동지회에 참석하였다. 

그 뒤 장인환·전명운 의사가 1908년 대한제국의 외교 고문으로 활동하던 

친일파 미국인 더럼 스티븐슨을 오클랜드기차역에서 저격, 암살하여 미국 법정에 서게 되었다. 

미주의 한인들은 전명운, 장인환 두 의사를 변호하기 위해 십시일반하여 이들의 재판을 도왔는데

그 와중의 법정 통역을 이승만에게 요청하였다. 그러자 이승만은 미주의 한인들에게 

전명운의 변호비용으로 3000달러의 거액(당시 장인환 의사의 미국 변호사 선임비는 4000달러였다.)을 요구했다. 

전명운과 장인환 두 의사의 재판을 위한 의연금이 미주 본토, 하와이, 멕시코, 국내, 연해주, 만주, 중국 등지를 

포함한 한국인이 거주하는 세계 각지에서 답지하여 7,390달러가 모아졌다. 

그리고 미주 한인들은 3000달러를 모아서 이승만에게 가져갔다. 

그러나 이승만은 샌프란시스코에 와서 형편을 살피고 통역하기를 거절하였는데, 

그 이유는 "시간 관계로 오래 있을 수 없으며 예수교인의 신분으로 살인 재판 통역을 원하지 않는다" 하고 

같은날 8월 25일 동방으로 갔다

그는 임시정부의 주요 수반이 되었던 까닭에, 그가 전명운에 대한 변호를 거부한 것은 오늘날 비판받기도 한다.


--- 중략 ---


단재 신채호는 '이완용은 있는 나라를 팔아먹었지만 이승만은 없는 나라를 팔아먹었다.' 라고 성토를 했었다

이승만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통령직을 임하면서도 임시정부 청사가 있는 상하이에서는 활동이 거의없어 

1925년에 탄핵을 당하게 된다 임시정부에서 이승만을 탄핵하자 이승만은 미국내 재미 한인 교포들에게 

임시정부로의 송금을 중단하게 하였다.

https://ko.wikipedia.org/wiki/%EC%9D%B4%EC%8A%B9%EB%A7%8C








1946

물리학자 길버트 뉴턴 루이스 사망 - 두산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088990&cid=40942&categoryId=33487




1962

대한민국의 제4대 대통령 윤보선이 

국가재건최고회의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사퇴하였다.-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EC%9C%A4%EB%B3%B4%EC%84%A0


[팩트TV] 이작가의 결정적 순간 28회-5대 대통령 선거,윤보선 vs 박정희

https://youtu.be/7aA1VufRMVo




1970

한글학자 최현배 사망 - 위키백과(1894.10.19 ~ 1970.3.23)

https://ko.wikipedia.org/wiki/%EC%B5%9C%ED%98%84%EB%B0%B0


최현배 - 두산백과(1894.10.19 ~ 1970.3.23)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47493&cid=40942&categoryId=33373


최현배 - 다음백과(1894 ~ 1970)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b20c3325b


[한글특집] '한글학자' 외솔 최현배 선생 기념관

https://youtu.be/Aq6wwe5ehig

(사진 - 독립운동가 최현배 - 네이버캐스트)









2000

문화재청, 안동 봉정사 대웅전 후불 벽화가 현존 최고(1428년 제작)로 확인 - 타임라인 한국사앱


한국경제 2000-03-24

봉정사 대웅전 후불벽화, 국내 최고 벽화로 확인돼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0032357191












*.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 - 동아일보 1923.3.23 오살사건 후속보도 "가해자 일본인은 술에 취해 이유없이 조선 아이를 총살해"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23032300209203002&officeId=00020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 - 동아일보 1928.3.23 구년전 삼일운동범 최승환 공판개정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28032300209202001&officeId=00020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 - 동아일보 1960.3.23 "자연발생적인것이다" 마산사건에서 구속됐다 석방된 학생들 진술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0032300209103001&officeId=00020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 - 한겨레신문 1989.3.23 공공시설 습격 땐 총기사용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9032300289101001&officeId=00028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 - 한겨레신문 1992.3.23 군 공개투표등 대대적 선거부정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2032300289101001&officeId=00028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 - 한겨레신문 1998.3.23 "윤씨 부분" 문건조작 확인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8032300289101001&officeId=0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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