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타임라인 한국사앱에는
"1937 독립운동가 김동삼 사망"이라고 나와 있지만
음력입니다
<네이버캐스트>
김동삼(金東三, 1878. 6. 23 ~ 1937. 4. 13(양력||음력 사망일은 3월3일)) 선생은
1878년 6월 23일 경북 안동시 임하면(臨河面) 천전동(川前洞) 278번지에서
김계락(金繼洛)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129&contents_id=7592
2015-7-13
[안동MBC뉴스]김희곤의 독립운동이야기(15)..김동삼
2)
위키백과에는
"1857년 - 프랑스와 영국이 청나라를 상대로 제2차 아편 전쟁을 일으키다."라고 나와 있지만
내용으로 들어가면
제2차 아편 전쟁(第二次鴉片戰爭)은 청나라와 영국·프랑스 연합군 간에
1856년부터 1860년까지 4년 동안 벌어진 전쟁이다.
<중국사 다이제스트 100/네이버지식백과> 제2차 아편 전쟁 1856 ~ 1860
1857년 말 광동의 영국영사 파크스는 이른바 '애로 호 사건'을
양광총독에게 항의한 바로 다음 날, 기다렸다는 듯이
프랑스와 함께 군대를 동원하여 광주를 공격했다. 제2차 아편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833035&cid=42976&categoryId=42976
1756
1845
수학자(집합론) 게오르크 칸토어 출생 - 두산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49229&cid=40942&categoryId=33456
TED: 무한대는 얼마나 클까?
https://youtu.be/UPA3bwVVzGI?list=PLUEZz8ZE8V0zAacq1ehA4GpvIu9sryg25
1847
1875
조르주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이
파리 시의 오페라 코미크 극장에서 초연되다. -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EC%B9%B4%EB%A5%B4%EB%A9%98
EBS 오페라 하우스 카르멘
1883
일본의 일본·부산간 해저전선 부설 - 네이버지식백과
1884년 4월 28일 일본은 조약에 따라 일본과 부산간 해저전선을 부설하고 부산에 전신국을 개설했다.
시공은 덴마크 대북부전신회사가 맡았다. 이 전선은 비록 일본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지만
이땅에 최초로 설치된 통신시설이었는데, 남로전선을 비롯하여 우리나라 전신사업에 두고두고
갈등 요인으로 작용한다.
1883년 1월 24일 조선 통서독판 민영목·협판 홍영식과 일본 변리(辨理)공사 죽첨(竹添) 사이에
〈부산구설해저전선조관〉을 체결했다. 조관 체결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조선정부 내에는
일본에 의한 국권 훼손을 염려하여 반대하는 이가 많았는데, 통서독판 조영하는
이 협약에 반대하다가 일본측 책동으로 1883년 1월 12일 자리에서 물러나고
1월 14일 그 자리에 민영목이 임명되어 협상을 매듭지었다.
이 대표적인 불평등조약은 우리 관리들의 미숙함을 탓하는 정도로는
보상할 수 없는 치명적인 전례가 되어 이후 을사조약, 합방조약으로 이어지면서
결국 국권을 빼앗기는 비극을 몰고온다.
조관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양국 정부는 일본 장기(長崎) 및 대마도와 부산간 해저전선 가설을 승인한다.
일본은 부산에 전신국을 세워 사무를 취급하고 조선은 장소 사용 및
수입 물품에 대해 일체 면세한다.
- 조선은 이 전선 개통일로부터 25년 동안 이 선로와
이익을 다투는 전선을 가설하지 않으며, 다른 나라에게도 해저전선 부설권을 주지 않는다.
- 조선이 해저전선을 가설할 때는 부산 일본전신국과 연결해야 한다.
- 조선은 해저전선을 보호하기 위해 법률을 정해야 하며,
만약 손상이 발생하면 범인을 의법 처벌하고 이를 배상한다.
- 조선 관보는 우선 취급하고 보비는 반감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일본의 일본·부산간 해저전선 부설
(기록으로 본 한국의 정보통신 역사 1, 2012. 8. 3., 진한엠앤비)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052135&cid=42348&categoryId=42349
1919
고종황제 국장 -> 일본장
윤치호는 자신이 한진창에게 들은 내용을 1920년 10월 13일자 일기에 기록해 놓았다.
윤치호와 한진창이 남긴 기록에 의하면
1. 이상적이라 할 만큼 건강하던 고종황제가 식혜를 마신지 30분도 안되어
심한 경련을 일으키다가 죽어갔다.
2. 고종 황제의 팔다리가 1~2일 만에 엄청나게 부어올라서,
사람들이 황제의 통넓은 한복 바지를 벗기기 위해 바지를 찢어야만 했다.
3. 민영달과 몇몇 인사는 약용 솜으로 고종황제의 입안을 닦아내다가,
황제의 이가 모두 구강 안에 빠져 있고 혀는 닳아 없어졌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4. 30센티 미터 가량 되는 검은 줄이 목 부위에서부터 복부까지 길게 나 있었다.
5. "고종황제가 승하한 직후에 2명의 궁녀가 의문사했다."고 했다.
윤치호는 한진창 역시 고종독살설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 들었는데,
민영휘, 나세환, 강석호(내관) 등과 함께 시신의 염을 한 민영달이 "한진창에게
이 내용들을 말해주었다"고 했다.
연합뉴스 2015-3-1
고종 독살설 5가지 근거…윤치호 영문일기서 공개돼 충격
서프라이즈
일본이 주도한 고종황제 독살사건의 진실은 구라토미 일기의 증언에 있다
일본과 친일파들이 숨기고 있는 대한제국의 진실
1923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이 창간되다 -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ED%83%80%EC%9E%84_(%EC%9E%A1%EC%A7%80)
2016-1-7
[코리아타임스 안성진 무료 영어 강의] 타임지 '올해의 인물'로 메르켈 총리 선정
1934
가야금 명인 한수동 사망 - 다음백과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b24h2958a
1938
일제 조선교육령 3차개정 - 다음백과
교육정책도 이와 함께 일본에 충성을 다하는 국민을 양성하는 것으로 전환하여
제3차 조선교육령이 1938년 3월 3일 칙령 제103호로 제정되었다(→ 고고쿠신민카세이사쿠).
이 법령은 군국주의의 이념에 따라 고고쿠신민을 기르는 것을 목적으로 했고,
그 이면에는
일본 덴노가 절대적인 권한을 가지는 정치체제를 명확하게 인식시킨다는 국체명징(國體明徵),
조선인도 민족의식을 버리고 덴노에 충성을 다해야 한다는 내선일체(內鮮一體),
이를 위해 충성스러운 마음을 실천으로 옮기도록 한다는 인고단련(忍苦鍛鍊)의
3대 교육강령이 작용했다.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b19j2358a
1961
(도덕수업용)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 _한손으로 치는 피아니스트, 파울 비트겐슈타인
1991
아마추어 촬영가(근처 아파트에 살던 주민)가 개인용 비디오 카메라로
로스엔젤레스의 경찰관이 로드니 킹을 구타하는 장면을 촬영했고
이 동영상이 1992년 로스엔젤레스 폭동 사태의 시발점이 되었다. - 위키백과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 - 한겨레신문 1992.5.1일자 LA흑인 폭력사태 배경-의미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publishDate=1992-05-01&officeId=00028&pageNo=1
[다큐클래식] 아시아 리포트 90회-LA폭동은 지속되고 있다
/ Asia report #90-1992 Los Angeles Riot, later, USA
1994
UH60헬기,공중폭발사고 조근해 공군참모총장등 사망 - 타임라인 한국사앱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 - 한겨레신문 1994.3.4일자 공군총장 헬기 추락 사망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publishDate=1994-03-04&officeId=00028&pageNo=1
1994
근로자의 날 5월 1일로 변경 - 타임라인 한국사앱
<노동절, 노동자의 날>
한국에서는 일제 치하였던 1923년 5월 1일에 조선노동총연맹에 의해
2000여명의 노동자가 모인 가운데 '노동시간단축, 임금인상, 실업 방지'를 주장하며
최초로 행사가 이루어졌다.
해방이후에는 '조선노동조합 전국평의회'의 주도아래 노동절 기념행사가 개최되었다.
그러나 정부는 1958년부터 대한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의 전신) 창립일인
3월10일을 노동절로 정해 행사를 치러오다 1963년 노동법 개정과정에서 명칭을
'근로자의 날'로 바꾸어 기념해왔다. 1964년에는 미국처럼 5월1일을 "법의 날"로 정하기도 했다.
이후 노동절의 의미가 왜곡되고 이름마저 바뀐 것에 대하여
노동단체들은 5월 1일 노동절을 되찾기 위한 노력과 투쟁을 계속했고
이런 갈등이 계속 이어져 오던 중 문민정권이 들어선 후
1994년부터 그 기념일이 3월 10일에서 다시 5월 1일로 옮겨졌다.
그러나 이름은 노동절로 바뀌지 않고 근로자의 날 그대로 유지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노동절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66959&cid=43667&categoryId=43667
민중의소리 2015-5-1
[발칙한뉴스] 오늘은 근로자의 날? 노동자의 날?
*.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 - 동아일보 1928.3.3 조선귀족->파산자 속출 "조민희"는 예우정지 윤택영,이기용 파산신고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28030300209202007&officeId=00020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 - 동아일보 1961.3.3 한미행정협정 민원서 체결 촉구를 결의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1030300209101001&officeId=00020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 - 동아일보 1975.3.3 고문폭로 새 정치쟁점으로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5030300209201004&officeId=00020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 - 한겨레신문 1994.3.3 미국 "한국 보안법 철폐 희망"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publishDate=1994-03-03&officeId=00028&pageNo=1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 - 한겨레신문 1999.3.3
2일저녁 서울 필동 남산골 한옥마을에서 시민들이
정월대보름 민속놀이인 달집 태우기를 하면서 풍년과 소원을 빌고 있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publishDate=1999-03-03&officeId=00028&pageN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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