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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이야기

[2.10] 1951 거창양민학살 사건

by 딧플 2016. 2. 10.




1)

타임라인 한국사앱에는
"1932 독립운동가 양기하 사망"이라고 나와 있고
링크는 위키백과로 되어 있지만
사망일자를 확인할 수 있는 백과사전은 없습니다

<위키백과>
양기하(梁基瑕, 1878년 음력 10월 8일 ~ 1932년 양력 2월)는 한국의 독립 운동가이다. 

<네이버캐스트>
양기하(梁基瑕, 1878. 10. 8∼1932. 2.) 선생은 
1878년 10월 8일 충남 논산군(論山郡) 두마면(豆磨面)에서 태어났다.

<두산백과> 1878 ~ 1932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로 광복군참리부 정보국장, 광복군사령부 교육위원장, 
임시정부의 참의부 교육위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조선혁명당의 정치부 책임자로 있으며 
항일무장투쟁을 지휘하다가 전사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양기하 [梁基瑕] (두산백과)

<다음백과> 1878 고종15 ~ 1932
일명 기하(基河)·인원(仁元)·임창주(林昌周). 호는 하산(荷山). 한말에 공주군수를 지내다가 
1910년 일본에 국권이 침탈당하자 만주로 망명했다. 
만주의 류허 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 서구(西溝)에서 
박장호(朴長浩)·백삼규·조병준(趙秉準) 등과 함께 교육사업에 힘썼다.
1919년 대한독립단 교통부장, 민국독립단 선전부장을 지내고 
듬해 광복군참리부 정보국장, 광복군사령부 교육위원장 등을 지냈다. 
1922년 상하이[上海]에서 김구(金九) 등과 함께 
한국노병회(韓國勞兵會)를 조직하여 독립에 필요한 군비마련과 군인양성에 주력했다. 
1924년 퉁화 현[通化縣]에서 임시정부 직속의 통일군정부인 육군주만참의부(陸軍駐滿參議府)를 
조직했고, 1927년에는 참의부의 교육위원장 겸 제3행정구위원장이 되었다.
1929년 결성된 국민부(國民府)의 지방부집행위원 겸 중앙사판소장(中央査判所長)을 지냈다. 
1930년에는 조선혁명당에 참여하여 현익철(玄益哲)·양세봉(梁世奉)·고이허(高而虛) 등과 함께 
항일무장투쟁을 지휘했고, 1931년 조선혁명당의 정치부 책임자가 되었다. 
1932년초 관뎬 현[寬甸縣]에서 일·만군경대의 습격을 받아 29명의 독립군과 함께 전사했다
1969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대전MBC 시사플러스 20140815 독립운동가 후손으로 산다는 것...

민족문제연구소 - 독립운동가들이 꿈꾼 나라


2)

타임라인 한국사앱과 위키백과 출생란,에는
"1996년 - 대한민국의 독립 운동가 정치인 윤치영."이라고 나와 있지만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자이고 

"2.9일자"를 참고 하세요 

한겨레신문 2015-1-11일자
법원 “윤치영, 독립유공자 서훈 취소는 적법”


3) 

타임라인 한국사앱과 위키백과 사망란에는
"1970 여성교육가 김활란"이라고 나와 있지만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자 입니다

<위키백과 - 김활란>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에 선정되었고,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정리해 발표한 
친일 인명 사전 수록 예정자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기독교대한감리회가 2005년 광복 60주년 기념으로 펴낸 자료집 
《하나님에게만 희망을 두고 살아라》에서 선정한 
감리교 내 친일 부역자 명단 12명 중에도 
윤치호, 신흥우와 함께 평신도 3인 중 한 명으로 포함되었다



4)

타임라인 한국사앱과 위키백과 사망란에는
"1974 극작가 유치진 사망"이라고 나와 있지만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자 입니다

<위키백과 - 유치진>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연극 부문에 포함되었다. 
총 12편의 친일 저작물이 밝혀져
2002년 발표된 친일 문학인 42인 명단,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들어 있다.



5) 

위키백과 출생란에는
"1921년 - 대한민국의 군인 이한림."
위키백과 사망란에는
"1983년 - 대한민국의 군인 이종찬"

이라고 나와 있지만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자들 입니다

<위키백과 - 이한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선정되었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일본군 영관급 장교 경력 때문에 선정되었다.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1775
수필가 찰스 램 출생 - 두산백과



1785


[박재우] 유체역학 1 - Navier-Stokes 방정식



1890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출생 - 두산백과

고전읽기 -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 1편 (2014.02.03)



1898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 출생 - 두산백과

서푼짜리 오페라, 연극 서푼짜리 오페라,브레히트 작, 이현찬 연출, 그림연극



1902
물리학자 월터 브래튼 출생 - 두산백과

Ⅲ-1-3 전기전자부품의 이해 : 트랜지스터



1923
물리학자 빌헬름 콘라트 뢴트겐 사망 - 두산백과

X선의 원리를 찾아라! 자외선 뢴트겐



1927
조선어 연구회가 기관지 <한글>을 창간하다.- 두산백과

(사진 - 기관지 한글 - 두산백과)


[국민TV] 광복 70주년 맞이 '한글사랑' 특별 전시 (2015.08.11)



1948
백범 김구가 <삼천만 동포에게 읍소함>이란 
제목으로 남한 단독정부 수립반대 성명 발표하다.- 위키백과

<위키백과>
2월 10일 통일정부 수립을 절규하는 《삼천만 동포에게 읍소함》 이란 
제목으로 남한 단독정부의 수립반대 성명을 발표하였다. 
이어 김규식과 공동으로 남북협상을 제안하는 서신을 북한에 보냈다. 
3월 김규식, 김창숙, 조소앙, 조성환, 조완구, 홍명희 등과 함께 
7인 공동성명을 발표하여 남한총선거 불참을 표명하였다


이이제이 영상2회 김구 특집 1/2 https://youtu.be/uLG08uQ6SJo
이이제이 영상2회 김구 특집 2/2 https://youtu.be/CLz6dgFmsto







1951

<다음백과>
9연대장 오익균(吳益均)의 지시를 받은 3대대장 한동석(韓東錫) 소령은 
1951년 2월 10, 11일 양일간에 신원면 소재 부락주민 570명을 빨치산 또는 
빨치산과 내통했다는 죄목으로 다이너마이트를 폭파시켜 대부분을 죽이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총살했다. 
학살당한 570명 중 젖먹이부터 16세까지의 아이들이 327명이었고, 
나머지는 노약자거나 부녀자였다. 이러한 사실로 볼 때 학살당한 사람들은 빨치산이 아니었다.

이 학살사건이 발생한 지 며칠 후 한 사병이 엄상섭(嚴祥燮) 의원에게 
사건의 내막과 학살당시의 사진, 그리고 학살당한 사람의 명단을 보내옴으로써 
국회차원의 조사가 시작되었다. 국회조사단의 현지조사는 경남지구 계엄사령관 
김종원(金宗元) 대령의 집요한 방해를 받아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거창출신 국회의원 
신중목(愼重穆)의 집요한 추적 끝에 사건의 진상이 국회에 공개되었다. 
국회의 결의로 이들 범죄자들은 1951년 12월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오익균·한동석은 
무기징역을, 김종원은 3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은 얼마되지 않아 김종원을 특사로 풀어주어 
경찰간부로 채용했고,오익균·한동석을 형집행정지로 석방했다.

특종tv 
거창양민학살사건을 다룬 영화 '청야' 국회시사회 무대인사 (2013.12.20)

영화 '청야' 예고편 https://youtu.be/0oE_KBuxfZQ

[다큐] 한국전쟁당시 미군의 민간인 학살 동영상 1/2 https://youtu.be/b_zhIvKvz4M
[다큐] 한국전쟁당시 미군의 민간인 학살 동영상 2/2 https://youtu.be/6AFanWaAVHc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9회 노근리 사건의 진실 (1999. 11. 14 방송)







1957

1961



1969
고급담배 청자 시판개시 - 타임라인 한국사앱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 - 매일경제 1969.2.10 20개들이 한갑에 백원 고급담배"청자"시판

(사진 - 청자 담배 - 출처: waygo.kr/220118643642)


한겨레신문 2015-2-23
저가 담배와 싸구려 정부, 저질 정권



2005
극작가 아서 밀러 사망 - 두산백과

[연극] 국립극단 '시련' 프레스리허설 (2015.12.1)



2008
숭례문 2층에 방화가 일어나다.- 위키백과

(사진 - 까만 잿더미로 무너져 내린 숭례문 - 한겨레신문 2008-2-11)


한겨레신문 2008-2-11일자
기초 부실한 ‘문화 상품화’가 재앙 불렀다

한겨레신문 2008-2-12일자
“토지보상 불만 때문에 숭례문 불질러”

2015-2-9
[tbstv] 핫이슈 나우 - 숭례문 화재 7년, 문화재 안전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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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 - 경향신문 1961.2.10 특재 첫 공판 오늘 개정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 - 한겨레신문 1996.2.10 한-일 "독도" 외교 분쟁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 - 한겨레신문 1999.2.10 자두는 암, 시금치는 알츠하이머 예방/"양심수 대폭석방"잇단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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