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단 아래서 소정방과 김춘추에게 술을 따르자 울지않는 이가 없었다." '의자왕이 끌려갈 당시 백제 유민들이 이산에 올라와 많이 울고 통곡하고 임금을 부르고 돌아오겠다는 기약은 없지만 그런 슬픈 전설이 있는 산입니다' - 향토사학자 백제 마지막 왕, 의자왕이 나당 연합군에게 항복하고 포로로 끌려갈때 의자왕은 유왕산에 잠시 머물며 백성들과 작별을 고했습니다. 그런데, 방탕군주가 잡혀서 끌려가는데 백성들이 눈물을 흘리고 통곡을 한다? 의자왕은 돌아오지 못하고 1,350여년이 지났죠의자왕(義慈王), 의롭고 자혜로운 왕이라는 시호는 멸망군주에게 어울리지 않는 시호입니다. 더구나 삼천궁녀와 놀면서 백제를 멸망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면 더욱 그렇죠 그런데, 시대가 흐를수록 궁녀의 수는 증가했습니다, 조선시대 궁녀의 수는 약 500여명, 고종때는 600여명, 그러면 백제때는 3,000여명??? 그러면 의자왕의 그 많은 삼천궁녀는 도대체 어디서 나타난 것일까요? 조선시대의 시적표현, 중국식 많다는 표현.... 의자왕의 즉위 시기는 641년, 태자 융을 20살에 낳았으니 적어도 왕위에 오른 나이는 40대.. 삼국사기에 "의자왕은 성격이 호방하고 결단력이 있었다"고 합니다 "해동증자"라고도 합니다. 효성과 우애가 깊다는 겁니다 의자왕은 정복군주 의자왕 20년동안 백제는 10여차례 신라를 공격합니다
'고대 국가에서의 전쟁이라는 것은 왕의 통치의일환으로 볼 수 있다 의자왕이 신라에 대한 공격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신라측에서 사생결단식으로 당나라와의 관계에서돈독하게 맺기 위해서 노력을 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해 의자왕은 친히 군대를 이끌고 나가 신라의 사십여성을 일거에 함락시켰다.' - 삼국사기 마지막까지도 강성했던 백제는 왜 망할 수 밖에 없었을것인가?
'당나라와 신라가 연합해서 백제를 공격, 결국망하게 되는데 당나라는 세계 최강의 군대, KBS 역사추적 의자왕 항복의 충격보고서, 예식진 묘지명 blog.daum.net/santaclausly/11793389 http://www.kbs.co.kr/end_program/1tv/sisa/tracehistory/vod/review/1560676_28170.html 보신분도 계시겠지만, 놀라운 사실이죠, 백제 의자왕은 끝까지 항전하며 버틸 생각이었는데, 부하장수 예식이라는 놈이 왕을 묶어 나당연합군에 항복을 해버렸다는 내용, 신 삼국지에서 관도대전에서 조조가 가장 걱정한 것은 군사들이 먹어야 할 "군량"문제였죠, 원소 휘하의 허유가 배신하고 조조편에 붙어 원소의 장수 순우경이 지키는 오소의 군량고를 태워버리죠, 아무튼, 나당연합군의 가장 큰 문제도 '군량'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백제 의자왕은 웅진성에서 장기농성할 생각이었쥬 배신한 부하장수 예식(당명 예식진)은 당나라에서 고관대작을 거치며 잘먹고 잘살다가 아무나 묻힐 수 없다는 북망산천에 묻혔다고 합니다. 썩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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